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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

[글쓰기모임 ②] 친숙함을 넘어 익숙해지는 ‘포기’



스포츠 세계에서 잊을법하면 접하게 되는 말이 있다. 벼랑 끝에 선 팀의 지도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단어다”라는 말로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팬들의 성원을 불러내며 마지막 혈투를 준비한다.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존재하지 않는 스포츠는 ‘포기’란 단어를 절대 허용치 않는다.


이상을 지향하는 스포츠와 달리,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포기’란 단어가 친숙하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청년, 내 집 마련의 목표를 접은 2030, 꿈을 포기하고 노량진으로 향하는 1020,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도 심심찮게 접한다. 스포츠는 굵은 땀방울의 대가로 기적을 선물하곤 하지만, 현실은 마음을 여는 데 인색하다. 

 

얼마 전, 삼성과 언론이 얼마나 친밀하게 지내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빳빳하던 몸을 수그린 채 협찬금과 자식 취업을 청탁하는 간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삼성이 혹여나 잘못될까 잠 못 이룬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경영진,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내세워 ‘자리’ 하나 내달라던 전직 간부.


한국가스안전공사는 2015~2016년 사원 공개채용에서 여성 지원자 7명을 의도적으로 탈락시킨 정황이 드러났다. ‘탄광촌의 기적’이라 불리는 강원랜드는 가족 근무 비율이 전체 직원 3명 중 1명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806명), 형제(170명), 부모 자녀 관계 (4명) 등 가족 채용 시 우대 조항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현대판 음서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장면, 크게 낯설지 않다. 사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는 매해 반복되는 문제이자 해결되지 않는 악습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최근 5년간 감사원이나 관리·감독 부처로부터 부적합 채용 지적을 받은 곳이 58군데나 된다. 그런데도 채용 비리 관련자들이 기소된 곳은 여섯 군데밖에 없고, 유죄판결까지 나온 경우는 단 두 건이다.


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도입해 과도한 스펙 쌓기를 줄여나가겠다던 말이 우습게 됐다. 전 정부는 NCS를 통해 산업현장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태도를 공정하게 평가하겠다고 했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정한 경쟁은 그럴싸한 포장에 불과하고, 내 뒤에 누가 있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남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일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돈과 권력을 쥔 한 소녀의 삶은 영화 그 자체였다. 국내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은 그녀의 입학을 위해 땀방울을 아끼지 않았다. 수업에 나가지 않아도 출석이 인정되고, 교수가 과제물을 대신 해결해주는 특별대우를 받았다. 세계적인 기업도 그녀의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부모를 잘 만난 이의 삶은 ‘낭만’ 덩어리였다.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한동안 술자리의 안줏거리가 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저쪽 한편에서 속삭였다. “현실(뉴스)과 비현실(영화)을 오가며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일 아니던가. 쟤는 재수가 없었던 거야. 현실적으로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잖아. 대한민국에 이 같은 인물이 하나뿐일까”


머릿속이 알코올로 가득 찬 탓일까,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일까. 꽤 오랜 시간 침묵이 흘렀고, 강력한 쐐기 펀치가 날아들었다. “네가 대기업의 자제 혹은 그녀와 같은 입장이라면, 다를 것 같니. 사람이 악한 것이 아니야. 사회 시스템이 악을 양산해내. 악해져야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고, 일반적인 행복에 다가설 수 있어”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나라고 화가 안 날 것 같니. 그런데 생각해봐. 우리가 그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데 섣불리 싸움을 택했다가는 지금보다 험난한 삶을 맞이할 가능성이 훨씬 큰걸. 솔직히 말해 100%지. 안타깝지만, 노력 없이 낭만을 누리는 수많은 이들을 욕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으면 된다고 외치고 싶었다. 평화적인 촛불 집회를 통해 정권교체도 이루어내지 않았던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 독재 탄압에 맞서 싸운 청년들이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울분이 가득 찼지만, 정의로운 척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취를 맛본 적이 있으십니까”


최소한 게으르지 않은 20대 초중반을 보냈다. 학기 중에는 장학금을 타기 위해 애썼다. 대학 졸업장만큼이나 중요한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 도서관을 집보다 가까이했고, 능숙한 외국어 실력을 갖추기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조교를 하며 학업과 일을 병행했고, 방학이면 아르바이트에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설렁탕과 쌀국수 그릇을 수없이 날랐고, 의류 판매장, 행사 진행 요원, 공사판 등을 누비며 온실 속 화초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런데도 저 위의 질문에 쉽사리 답할 수가 없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질문.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전쟁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획기적인 경제 발전의 주역이 되지도 않았다. 평범하게 공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온 것이 전부다.


대학 졸업장이나 토익, 자격증으로 성취감을 맛봤다 하기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너무나도 많다. 현지인보다 영어를 잘하는 청년이 수두룩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이들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영어는 기본, 중국어와 불어 등 다양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추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경험은 ‘시간 낭비했다’라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식사를 마친 손님이 떠나간 자리를 정리하거나 신발 하나를 팔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던 아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대기업 인턴이나 직무 관련 경험이 아니라면, 시간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미련한 사람이란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지나온 시간을 원망했다. 훨씬 더 치열한 삶을 살아왔더라면, 후회가 적은 나날을 보내고 있지는 않았을까. 배경이 뛰어난 이들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갖췄더라면, 낭만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남 욕하기에 바빴으니 성공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적도 없고, 그들이 원하는 경험을 갖추지도 못했으니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닐까. 하나하나 포기하는 삶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


- by KSL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