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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

[글쓰기모임 ③] 너 혹시 동성애자야?



"너 혹시 여자 좋아해?"
"네? 제가 아무리 솔로라지만 저도 취향이 있습니다."
"맞아. B가 너 여자랑 손잡고 걸어가는 걸 봤다고 하던데?"
"에이, 잘못 봤겠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굳어가는 표정을 숨기는 게 고작이었다. 마른 침을 몇 번이나 삼키며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던 선배는 이내 흥이 식은 듯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갔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려 카페 밖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에 비친 내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 위선자.


유리에 비친 내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앞의 선배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오늘도 나를 숨기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예전에는 찾아야만 볼 수 있었던 동성애 코드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티비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다. 브로맨스로 포장하여 동성의 우정을 그리던 소재가 점점 사랑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동성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티비에 나오는 잘생긴 남자와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와 예쁜 여자. 판타지에나 등장할 것 같은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이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와 동시에 예쁘고 잘생긴 사람의 동성애는 괜찮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은 싫어라는 새로운 편견도 등장했다.


‘동성애’ 코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나는 점점 더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두려움이 가득했다. 무언가 뒤에서 계속 쫓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은 계속 편견으로 무장하고, 그럴수록이 나의 자괴감은 늘어가고 있었다.


학창시절, 학교에는 '이반 검열'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당시 학교에는 이성이 아니라 동성끼리 손을 잡으면 벌점이 부가되는 곳이 있었고, 학교에 따라 누가 동성애자인지를 묻는 설문지가 각 반마다 돌려졌다. 설문지의 질문도 참 유치했다.

 

[우리 학교에 동성애자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동성애를 하는 학생에 대해 알고있다면 그 학생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이런 설문지가 돌려졌다면, 아마 나는 이름이 제일 많이 나오던 학생이었을 것이다.
짧은 머리, 보이시한 스타일, 거기에 출석도 귀찮아서 자주 가지 않았던 학교까지. 나는 '이반 검열'에서 그들이 찾고자 했던 이반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던, 소위 말하는 이반이었으니까.

 

그래도 당시에는 당당했다. 동급생뿐만이 아니라 학교의 선후배들까지 나를 이반이라 알고 있었음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함에 부끄러움이 없었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두렵지 않았다. 나를 이해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는 지인들이 있었으니까. 무서울 것이 없었다. 가진 게 많다고 생각했고, 잃어버릴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은 아무도 나에게 동성애자냐고 묻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 취업을 하게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누구에게도 내가 동성애자라 이야기할 수 없었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발언도, 혐오하는 발언도 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사회는 냉혹했다. 동성애자임을 들켜서 회사를 그만둔 지인의 이야기, 동성애자임을 들켜서 강간을 당할 뻔했다는 친구의 이야기, 커밍아웃을 했다가 아웃팅을 당해 집에서 쫓겨난 이야기, 이런 모든 일을 겪고 힘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숨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 자립을 하려고 했으나,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나를 숨기는 일에 익숙해지고 아무렇지 않게 애인을 이성으로 포장하여 이성애자처럼 행동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너 혹시 동성애자야?”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진다. 일하는 곳에서 잘릴 수도 있고,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으며, 극단적으로 자살을 하게 만들 수도 있는 질문을, 단지 호기심으로 던진다. 웃는 얼굴을 하고 그저 나는 궁금했노라 이야기를 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사회의 시선이 변하지 않는 이상 폭력은 지속될 것이다. 호기심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폭력이.


- by 다크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