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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

[기획 연재①] 우리의 어둠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평균 34.1세, 근황 인터뷰>

[기획 연재] 우리의 어둠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평균 34.1세, 근황 인터뷰>

본 기획은 국민권익위원회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의 어둠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우린 모두 행복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 같다. 약간의 과시적인 동기가 섞여있지만, ‘행복한 감정’이 들면 당연히 자랑하고 공유하고 싶은 법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어두운 감정’도 분명 있다. 인스타에는 업로드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의 어둠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우울한 이야기는 공유할 곳이 마땅히 없다. 나의 고통을 남에게 알리기 창피할뿐더러 남이 듣기에도 거북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의 불편과 어두운 감정이 자꾸 숨겨지는 게 아닐까? 술자리에서 종종 푸념을 늘어놓고 하소연하지만 금새 휘발된다. 따라서 우리의 어둠이 공론화 되거나 대안을 모색하거나 등의 단계로는 넘어가지 않는다. 

‘어두운 감정’의 창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를 압박하는 불편과 우울한 이야기들을 공론화한다면 어떨까? 이러한 취지로 2018년 10월부터 2030청년들을 하나 둘씩 만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요새 어떤 생각으로 사는 지. 너를 짓누르는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거침없이 말해주라고 했다. 

12명의 청년들이 쏟아낸 고민사항은 비슷비슷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이들의 하소연은 경제적 문제, 가족의 문제 등 다분히 현실적인 것에 국한됐다. 그리고 그 걱정거리들은 끈끈한 생명체처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걱정이 저 걱정을 낳고, 저 걱정이 이 걱정을 야기했다. 우리 청년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결국 하나의 ‘맥락’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무거운 돌덩이가 청년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게 보였다. 

12명의 청년들의 이야기를 실으며 그들의 얼굴을 그렸다. 친구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미리 밝힌다. 하지만 그 외에 모든 이야기는 가공한 것이 없다. 이야기 중간중간 삽화도 그렸다. 핵심이 되는 이야기들인 것 같아 재차 강조하고 싶었고 그림으로 풀어내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다.

‘꿈과 행복’ 같은 이상적인 주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에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결혼(135번 언급) > 집(전세)(90번) > 돈(빚, 대출)(89번) > 부모(88번) > 육아(30번) ’ 순이었다. 가장 씁쓸했던 것은 12명 중 한 명도 빠짐없이 ‘돈’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겉으로는 매우 평범하지만 각자 자신만의 강력한 의견을 갖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었다. 이 글은 아주 가까운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당신도 무수히 고심했을 주제들이다. 우리 세대가 지금 치열하게 견뎌내고 있는 문제들이다. 당장 해결책을 찾을 순 없겠지만 12명 청년들의 입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글쓴이 소개]

냉소적인 인간이 됐다. 꿈이란 건 없어! 

내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인지부조화의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33살 여자 사람이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나’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나’는 도저히 조화가 되지 않지만 어떻게든 조화를 이루어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대출이자를 갚으면서 그림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삐딱한 불균형 때문일까, 마음에 여유가 없다. 그래서 연애도 잘 못한다. 하물며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애는 언제 낳지? 나도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런데 애는 누가 키우지? 돈은 벌어야 될 텐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내가 가장인데? 빚은 누가 갚지? 이런 생각을 하면 숨이 막힌다.‘꿈은 바보나 하는 말’사실이었다. 그래도 도전해볼까? 회사를 관둬버릴까? 퇴직금으로 해외로 나가서 공부할까? 그러면 우리 엄마는 누가 돌보지? 

난 결코 냉소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학생시절에는 꿈을 먹고 사는 이상주의자여서 현실주의자 친구들에게 면박을 당했을 정도다. 2011년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꿈과 비전을 향해 가고자 했다. 대기업 공채 같은 ‘닥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고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중소기업이나 작은 회사에서 원하는 문화기획자로서 경험을 쌓으려고 했다. 남들과는 다르게! 열심히 살다 보면 더 멋지게 성장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봉 1700만원 비정규직 생활을 하다 보니 자존감이 무너져버렸다. 결국 2년 후, 대기업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만다. 그 때부터 나는 냉소주의적 인간이 됐다. 꿈이란 건 없어!

2013년 4월 나이 많은 신입으로 겨우 대기업의 문턱에 합류했다. 지금은 대기업의 7년차 대리다. 회사에서 일 잘하는 인재로 인정은 받고 있지만 항시 마음 한 켠에는‘슬픔’이 차지하고 있다. 7년 전, 저임금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꿈에 대한 미련. 그리고 지금 회사가 답이 아님을 알면서도 ‘돈 때문에’ 충성심을 바치는 나. 매일매일 연기를 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친구들아, 너희들은 잘 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