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②] 나는 정말 끝난 걸까? <평균 34.1세, 근황 인터뷰>
- 이민지, 87년생, 33세, 여, 미혼, 유통회사 근무, 수원시 거주
본 기획은 국민권익위원회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내가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또래 친구들을 보면 길게 연애하는 친구들이 없어. 공백기거나 아니면 결혼한 친구들이야. 결혼한 친구들도 지쳐 보이지만 결혼을 안 한 솔로인 친구들이 더 지쳐 보여. 누군가를 만나는 걸 피곤해 해. 사실 결혼도 연애라는 시기를 거쳐야 하는 건데. 그러기에는 다른 곳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회사 일에 치이고, 이직도 해야 하고, 갱년기 온 엄마도 챙겨야 되고, 내 건강도 챙겨야 되잖아. 너무 너무 바쁘지. 게다가 상대방 조건도 보려니까 더 만나기 어렵지.
그리고 나는 누군가 새로 사귈 때 솔직하면 안될 것 같아서 연기를 해.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 도망칠 것 같아서. 이러니 진심이 담긴 새로운 관계를 맺기가 너무 어려워. 서른이 넘은 남녀는 더 안 솔직하고, 진정성도 더 떨어지는 것 같아. 그래도 연애를 하려면 무언가가 깊이 와 닿아야 되는데 그게 안 돼. 그리고 무언가가 와 닿아도 경제력 같은 조건이 안 된다 싶으면 확 접어버려. 나 요새 심각해 정말.
요새 최대 고민은 사랑? 내가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이란 목적이 있어서인지 사람을 잘 못 만나겠어. 어렸을 때처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날 것 같고, 그래서 결혼도 못할 것 같아. 진짜 불안해.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 것이 이 사회의 통념인데 내가 그 통념을 벗어날 경계에 서있는 것 같아. 그럼 나는 불효자가 되고, 뒤쳐진 인생, 남들과는 다른 유별난 인생이 될 것 같아.
그리고 결혼을 하려면 돈도 많이 들잖아. 나는 사실상 집에서 가장 인데. 내가 결혼하면 우리 집은? 우리 엄마는 누가 부양하지? 그리고 이런 나의 경제적 상황을 다 이해하고 감당해줄 사람이 있을까? 요즘처럼 손해보기 싫어하는 세상에? 누가?
2018년에는 소개팅을 10번도 넘게 했어. 인연으로 이어진 관계는 하나도 없어. 최근 소개팅 자리에서 스스로한테 놀란 게. 상대방이 빚이 조금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 순간 도망치고 싶은 거야. 내가 사람을 만나는 데 너그러움이 하나도 없더라고. 단점이 조금만 보이면 싫어.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내 삶에 여유가 없으니까 그런 것 같아. 각박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 같아. 이것저것 따져대는 거야. 하나하나 솎아내고! 상대의 장점 보다는 단점을 찾아내기 급급하고. 작은 단점은 매우 확대시켜 심각하게 받아들여. 결국 어느 누구와도 사랑을 못하는 지경이 된 거야! 슬프다!
“33살, 나는 정말 끝난 걸까?”
최근에는 지인을 통한 소개팅도 뜸해졌어. 그래서 ‘소개팅 앱’도 깔았지. 근데 진지한 만남으로 이어진 적은 없어. 소개팅 앱에서는 얼굴, 나이, 회사, 학교, 직업까지 다 공개가 돼. 아마도 나는 나이에서 무수히 거절당했지 싶어. 회사 남자 선배가 나한테 내년부터는 정말 내리막길이라고 했거든. 여자 나이가 33살이면 그 이후부터는 노산이라고. 33살부터 조산기가 더 많아진다고. 남자들이 여자를 볼 때 33살을 마지노선으로 본다고 하더라고. 자기 주변 남자들의 분위기가 그렇대. 이게 현실이니까 33살은 넘기지 말라고. 여자는 나이가 먹을수록 남자를 선택 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드는 거라고. 이런 말을 들으면 솔직히 화도 나는데, 속으로는 조급해진다. 나는 정말 끝난 걸까?
소개팅 앱으로 2번 정도 실제 만난 적이 있어. 근데 완전 다른 사람이 나왔더라고. 앱에서 본 사진이랑은 180도 다른 얼굴이고, 매우 진중하고 철학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직접 만나니까 전혀 다른 사람이더라! 나도 물론 엄청 연기를 했어.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으니까. 나를 오픈 안하고 상대방에게 차갑게 굴었던 것 같아. 소개팅 앱은 결국 내 에너지와 시간만 몽땅 낭비한 것 같은 패배감이 들게 하더라. 탈퇴했어.
결혼도 하지 않고 애기도 낳지 않은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
요새는 소개팅 주선이 들어와도 안 만나. 내가 왜 이렇게까지 남자를 만나려고 아등바등 하는 걸까? 허무함이 밀려왔어. 외로움? 그렇지도 않아. 결혼을 하고 싶나? 아니야. 2년 내 결혼할 생각이 없어.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러운가? 그렇지도 않아. 너도 알다시피 나 일 때문에 엄청 바쁘잖아.
33살이 됐으니 결혼을 하는 것이 정상이고, 그 반대의 모습은 비정상일까? 우리 엄마는 요새 손자 타령을 하시기 시작했어. 엄마 친구들이 할머니가 되기 시작했거든. 부담스러워 진짜. 내가 엄마한테 “손자는 완전 멀었어! 기대하지마!”라고 큰 소리치면, 엄마는 입술을 쭉 내밀면서 “그런 소리 하면 못써!”라고 정색하셔. 오죽하면 내가 엄마한테 효도하려면 얼른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되겠지? 이런 생각도 해.
언젠가는 초등학교 동창이 내 인스타에 이렇게 글을 남겼어.
“너도 어서 결혼하고 애기 낳아서, 우리 행복하게 같이 살자.”
할말이 없더라. 친구의 해맑은 행복론은 나에게 폭력 같기도 했어. 결혼한 본인은 행복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애기도 낳지 않은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인거야?
대상포진이 걸린 선배들
2018년 초부터 엉덩이 왼쪽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허벅지 뒤쪽까지 저림 증세가 내려가서 한의원에서 치료를 두 달쯤 받은 것 같아. 한동안 괜찮더니, 최근에 다시 저림 증세가 시작됐어. 통증의학과에 가보니 허리 디스크는 아니고 좌골신경통이 있대. 하루 종일 앉아있는 자세 때문에 엉덩이 근육이 신경을 눌러서 통증이 생긴 거래. 결국 도수 치료도 받았잖아.
요즘 주변에 아픈 사람 진짜 많아. 회사 후배는 여름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어. 2년 전부터 허리디스크가 약간 있었는데 최대한 수술을 안 하려고 버티다가 한 거래. 디스크의 70%가 밖으로 흘러나와서 절개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대. 지금은 허리 복대차고 회사 다녀. 좌식 식당에는 가지도 못해. 쪼그려서 앉으면 안되거든. 그런데 수술하고 3주만에 회사 나왔잖아. 결국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고 있잖아. 허리에 얼마나 안 좋겠어. 너무 불쌍해.
허리 환자들이 제일 많아. 어깨 담 환자들도 많고. 우리 팀만 해도 2명이 환자야. 각 팀마다 2-3명씩은 허리 환자들이 있는 것 같아. 다른 팀 후배는 여자앤데, 다리가 계속 저렸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잠자리에서 못 일어났대. 허리디스크가 갑자기 심각해져서. 근데 그 친구는 그 날 아버지가 데려다 줘서 출근은 했었어. 그냥 쉬지. 팀장님 눈치 보느라 출근했었다고 하더라고.
이 정도 상황이면은 회사에서 서서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해주면 오죽 좋냐? 하지만 사무실 집기들이 10년도 넘었어. 책상, 전화기 전부. 의자도 엄청 오래 된 것들이라 삐걱삐걱거려. 분명 허리에도 안 좋을 것 같아. 서서 일하는 책상, 회사 경비로 얼마 하지도 않을 건데. 회사는 왜 직원들한테 투자를 안 해줄까?
작년에 학교 선배 두 명이 대상포진에 걸렸었어. 둘 다 남자고 30대 중반이야. 한 명은 허리 쪽에, 한 명은 얼굴 쪽으로 대상포진이 왔었어. 허리 쪽에 대상포진이 온 선배는 누워서 자는 것도 힘들다고 했던 기억이 나. 근데 그 선배는 보험사 지점 실적이 꼴등이어서 병가도 못 내고 매일매일 출근했었어. 꼴등으로 마감하면 지방으로 쫓겨난다고 악착같이 일하더라.
아니, 대상포진은 보통 50세 이후에 예방접종을 맞잖아. 그런데 요즘엔 젊은 사람들이 엄청 잘 걸려. 왜 일까? 업무 과중과 스트레스 때문인가? 나도 좀 무서워서 예방접종 미리 맞을까 해. 다들 잘 사려고 하는 일인데, 이놈의 일 때문에 몸은 더 아파. 아프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 당위는 무엇일까? 돈?
'청년세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청년 사회적 대화 전문가 교육 프로그램] 청년,평화감수성과 민주적 토론진행을 만나다! (0) | 2019.03.20 |
---|---|
[기획 연재③] 부모에게 들어가는 돈만 없으면 성공한 인생? <평균 34.1세, 근황 인터뷰> (0) | 2019.03.19 |
[기획 연재①] 우리의 어둠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평균 34.1세, 근황 인터뷰> (0) | 2019.03.12 |
[(가)청년 사회적 대화 전문가 교육 프로그램] 청년, 민주시민교육을 만나다! (0) | 2019.03.04 |
연극 <고시원의 햄릿공주> (0) | 2019.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