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③] 부모에게 들어가는 돈만 없으면 성공한 인생? <평균 34.1세, 근황 인터뷰>
정호준, 86년생, 34세, 남, 미혼, 보험회사 근무, 서울시 구로구 자취
본 기획은 국민권익위원회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연애하는데 온몸을 던지지 않는다.
최근 연락을 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끝냈어. 아니 끝났지. 사귀는 건 아니지만 만난 지가 2개월됐나. 여자도 뭔가 아리까리한 느낌이 있었는지 나한테도 그게 느껴지더라고. 여자가 휴가로 뉴욕 여행을 갔는데 비행기에서 내렸으면! 숙소에 도착했으면! 사실 썸남한테 ‘도착했다’ 이 정도는 연락 주는 게 정상아니냐? 연락을 안주더라고. 뭐, 나도 살짝 지루한 감이 있어서 결판을 지어야 할 때가 왔나 보다 했지. 상대방도 결혼을 생각하면 내가 별로였겠지? 물론 나도 확신은 없었으니까 열정적으로 몰빵은 안 했던 듯하다. 아, 요즘엔 모르겠다. 진짜 누구를 만나도 확신이 안 생겨. 여자 마음도 모르겠어. 이렇지도 저렇지도 못한 관계만 계속 생기는 것 같아. 언젠가부터 연애하는데 온몸을 던지지 않아. 20대랑 완전 달라졌지. 굉장히 냉정하게 사람을 본다고 해야 하나. 요즘엔 이런 내 마음도 무섭고 상대방의 마음도 무서워. 사람을 못 만나겠어. 아오.
결혼도 사실 사랑을 해야 할 수 있는 건데, 또 사랑만을 위해서, 연애만을 위해서 사람을 만날 시기는 아니잖아 우리가. 정말 오래 나랑 살 수 있는 사람, 나랑 잘 맞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최근에는 심각하게 이러다가 결혼할 사람을 못 만나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나 혼자 살 것 같은 느낌. 혼자의 삶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현실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급습했어. 소개팅을 내가 올해만 12번은 했다 진짜. 그래도 아직까지 혼자야.
언제까지 이 생활을 계속해야 되냐? 결혼은 하겠냐, 이래서?
부모에게 들어가는 돈만 없으면 성공한 인생?
30대랑 20대의 사랑은 완전 완전 다른 것 같아. 결혼을 고려하느냐 않느냐의 차이인 듯 해. 20대에는 결혼을 거의 생각 안 했지만, 30대에는 결혼을 먼저 생각하니까 조심스럽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해. 부모님의 기대도 솔직히 무시할 수 없고.
나는 2~3년 내에는 결혼할 생각이 없어. 경제적으로 준비도 안됐지만, 그보다 마음의 준비가 안된 것 같아. 결혼을 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 아니야. 자녀가 있다고 생각하면 눈 앞이 깜깜하다. 소개팅 자리에 나가면 상대방도 나도 결혼을 전제로 상대를 재는 게 느껴져.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러다가 나 혼자 늙어 죽겠지 뭐.
30대 이후에는, 조건을 따져가며 상대를 찾더라고 내가. 나도 나한테 놀랐어. 내가 이렇게 변했다니. 솔직히, 경제적인 부분을 따지기 시작했어. 외모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연봉이나 스펙이 결정적인 DEAL BREAKER(성사 장애 요인)가 되더라고. 내가 완전 쓰레기 속물 다 됐구나 생각을 해. 특히, 상대의 부모의 경제력을 봐. 만약에 여자가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사람이라면 솔직히 자신이 없어. 어렸을 때부터 만나서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을 수도 있겠지. 근데, 새로운 상대를 만나는 입장에서는 손해보기 싫고, 이기적으로 따지게 되더라고.
요새 친구들끼리도 이런 이야기를 했어. 상대를 보는 여러 가지 조건 중 하나로 꼽는 것이,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 이라고. 만약에 나도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인데 상대까지 그렇다면 더더욱 피하겠지. 우리끼리 하는 말이, ‘부모에게 들어가는 돈만 없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이러잖아. 자식이 되가지고 너무 잔인하다 싶지만 이게 현실이다.
서울 평균 집 값이 7억대를 넘었다더라
“대출 때문에 쪼그라든 내 인생!” 애들 만나면 대출 이야기를 겁나 해. 학자금 대출부터 시작해서 차, 집 보증금 등등, 남자 놈들도 자신감이 없어. 학자금 대출은 회사 생활 5년차에도 갚기 힘든 것 같더라. 빚쟁이 인생이 안 끝나는 거야. 대출이 일의 의욕을 준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우울하지 무슨 의욕이냐! 돈 벌면 족족 이자로 다 빠져나가는데 결혼하면 더 빡세겠지.
대출이 있던 상태에서 결혼을 한 친구들은 장난아니게 압박 받더라고. 대출 종류만 3~4개야. 월급의 80%가 이자로 사라지는 인생. 외벌이만으로는 힘든 구조인데, 이 구조에서는 자녀를 낳는 것도,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도 진짜 심란할 것 같더라.
작년 10월에는 서울 평균 집 값이 7억대를 넘었어. 지금 내려간다고 하지만 당장 멀었어. 팍팍 떨어져야 돼! 7억 소리 듣고 진짜 한숨이 나왔어. 7년 동안 일해서 열심히 모은 돈이 최소 집값의 절반은 되어야 할 텐데, 30%도 힘들잖아.
난 솔직히 대출 정책도 원망스럽다. 나는 부모님의 지원도 받을 수 없는 흙수저인데 대기업에 다니니까 ‘디딤돌 대출’도 받을 수 없어. 그런데 부모가 부자인 백수 금수저는 ‘디딤돌 대출’을 받더라고. 이거 좀 이상하지 않냐? 흙수저 둘이 열심히 회사 다녀서, 부부합산 연봉 7천이 넘으면 저금리 대출 받을 수 없고, 금수저인데 백수는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요새는 차라리 처가살이가 답이다 싶어. 4.7%대의 대출 이자를 감당해가면서 팍팍하게 살아낼 자신이 없다. 나는 언제쯤 결혼할 준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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