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⑦] 이게 다‘집값’ 때문이야! <평균 34.1세, 근황 인터뷰>
조재욱, 83년생, 37세, 남, 미혼, 외국계 근무, 경기도 하남시 거주
본 기획은 국민권익위원회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친구들 애기 사진 보면 소름 돋고 징그럽다
결혼의 데드라인을 2018년 겨울로 정해놨었는데 이미 지나버렸다. 작년 겨울 되자마자 여자친구랑 헤어졌잖아. 또 결혼 실패다. 결혼의 데드라인이 자꾸 늦춰지고 있어. 올해 가을까지는 꼭 결혼해야 되는데. 불안하다. 친구들 무리 중에 남은 사람이 진짜 몇 없어. 내가 마지막까지 솔로로 남는다면 생각만 해도 겁나 우울하다. 이거 봐봐. 친구들 카톡 프로필 사진이야. 애들이 엄청 크지? 난 친구들 애기 사진 보면, 이제 소름 돋고 징그럽다. 거의 초등학생들이야. 난 얘네들 언제 따라잡냐?
나는 결혼생각 추호도 없었어.
혼자 살면 외로울 것 같아서 결혼은 해야지 싶어. 지금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 친한 친구들 7명이 카톡 단톡방에 있는데 유부남과 미혼남이 섞여 있거든. 그 단톡방은 조용해. 그 중에서 애기가 있는 친구들만 따로 방을 파서 이야기해. 애기 이야기만 엄청 한다더라. 왠지 모르게 도태되는 느낌이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결혼생각 추호도 없었어. 자유로운 영혼하면 나 아니었냐? 10대 때부터 기타를 좋아했고, 밴드 동아리 활동을 해왔잖아. 대학생 때도 소규모 음악 밴드 활동을 하면서, 엄청 자유분방한 친구들이랑 친했지. 30대 초반까지도 결혼 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필요성도 못 느꼈어. 그런데 직장인 9년차가 되고, 같이 입사한 동기들, 같이 일하는 선배 동료들이 하나 둘씩 애기 아빠가 되니까 내가 점점 고립이 되더라고.
한번 상상해봤어. ‘내 나이는 50 인데 나 혼자다?’ 그럼 너무 외로울 것 같은 거야. 외모적으로도 자존감도 없을 거고. 나 2년 전부터 탈모약 먹잖아. 결혼한 친구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와이프랑 가고 가족들이랑 놀러 가고. 함께 있는 모습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정답 같더라고. 나도 그런 생활을 할 때가 된 것 같아. 말 그대로 ‘나 혼자’가 될 것 같아서 무서워. 그래서 결혼을 해야겠지 싶어. 이렇게 결혼 생각을 하는 내가 스스로도 신기해.
그리고 나이도 꽉 찼지. 이제부터는 내 나이도 내리막길이다. 너도 안심해선 안 된다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어. 나를 가장 비싸기 팔 수 있는 나이는 끝났어. 그래서 결혼 데드라인을 정한 거야. 그렇지 않으면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갈 것 같거든.
나는 부모님에게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차를 샀고, 연금보험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어. 사실 경제적으로는 결혼 자금 준비가 안됐어. 사실상 부모님이 지원이 없으면 현재 결혼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가족 세 명이 강동구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아마 내가 결혼을 하면 더 작은 집으로 줄이고 내 결혼자금을 아버지께서 마련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모은 돈만으로는 서울 외곽에도 못 들어가지.
철없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나는 부모님에게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솔직히 구조가 그래. 웃긴 말이지만 왜 이렇게 생각하느냐면, 지금 치솟는 부동산 상황을 만든 것이 우리 부모님 세대 때문이야. 물론 우리 부모님도 가지고 있는 게 집 밖에 없어요. 그리고 부모님 세대는 약간의 부동산 혜택도 받았잖아. 지금의 우리는 꿈도 못 꿀 집 값이 그 당시는 아니었어. 지금 우리 가족이 사는 집도 사실은 재개발 혜택을 본 동네야. 물론 15년 간 15평짜리 집에서 힘들게 살았지만 결국 재개발 혜택을 받아서 지금 수준의 집에서 살게 된 거야. 나는 그 혜택을 당연히 자식인 나도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주의다.
‘집값’ 하나만 해결되면 그 어떤 복지보다 좋은 복지가 없지.
만약에 집값의 50%를 해올 수 있는 여자분이 있다면 내일도 당장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몰라. 여자분이 절반을 해온다고 현재 내가 결혼 때문에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다 풀릴 것 같아. 괜찮은데? 행복할 것 같다. 처갓집에 정말 잘하면서 살 거다.
내가 아버지 지원금을 받는 다는 가정을 해도 서울 전셋값의 절반에도 안될 걸. 그러니까 합리적으로 남자 50% 여자 50%로 결혼 자금 마련을 한다면 한결 수월할 거야. 남자가 꼭 과반 이상을 대야 하는 이유는 없잖아? 게다가 우리 가족은 남자 형제만 둘이야. 나랑 남동생. 남동생까지 결혼시키려면, 아버지 노후는 답이 안 나와.
그러니 5:5로 집 비용을 해오고 각자 부모에게 용돈도 똑같이 하고 대출도 똑같이 갚고 집도 공동명의로 하자는 거야. 여담으로 남녀 5:5로 했을 때 처가 쪽에서 남자를 대하는 태도들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전제도 있어야 할 것 같네.
그러니까 결국 ‘집값’만 해결이 되면 모든 문제와 갈등이 풀려. 결혼? 많이 할거다. 그리고 애도 많이 낳을 거고. 결혼과 출산율이 점점 줄어드는 이유는 다 ‘집값’ 때문이라고 봐. ‘집값’ 하나만 해결되면 그 어떤 복지보다 좋은 복지가 없지. 부모님의 노후 걱정도 없을 거고. 보육비 월 30만원? 대출 이자에서 다 상쇄된다! 집 값만 해결되면 많은 사람들이 결혼할 수 있다! 진짜!
회사 남자 후배가 7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준비를 하고 있어. 구리에 사는 친구인데 여자친구는 송파에 살아. 여자친구는 송파 근처에 집을 얻고 싶어하는데 이 친구가 모은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지. 고민이 엄청 많더라고. 아무리 조합을 해도 여자를 만족시킬 만한 장소와 평수를 찾지 못하고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더라. 게다가 그 친구는 학자금 대출도 아직 다 갚지 못했어. 돈은 없는데 결혼은 해야겠고. 이게 우리의 실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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