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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

[청년정치] "그래서 '우리'가 정치하겠습니다" 행사 스케치 및 후기






“58680년대에 머물러 있다청년정치인들이 꿈틀댄다


작성: 추재훈


“언제까지 고성장시대의 감정을 가진 분이 계속 권력을 잡을 것인가. 우리를 대변할 수 없단 걸 인정하고 물러나시라.”(미래당 김소희 공동대표)

“무조건 청년 몫을 달라는 건 아니다. 미래를 대변할 수 있는 새 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자유한국당 백경훈)

“위기를 돌파하고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 오늘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제 청년의 시간이다.”(녹색당 고은영)



  9개 정당의 청년 정치인 13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행사명은 “그래서 ‘우리’가 정치하겠습니다”로 2019년 12월 19일 혜화동에서 열렸다. 청년 정치인들의 모임인 ‘청년정치네트워크’를 중심으로 ‘LAB2050’과 ‘바꿈,세상을바꾸는꿈’이 주최했다.



  청년 정치인들은 다양한 이슈를 거론했다. 무엇보다 기성정치인에 대한 쓴소리에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제대로 된 역할’을 갈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정다운 씨는 “정치권에 딱 하나를 요구하고 싶다”며 “약속 좀 지켜라”고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므로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당 이동수 청년정치국 대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이 대표는 “2007년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전용기 도입을 논의했는데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전용기냐며 반대했다”며 “3년이 지나 자신들(새누리당)이 여당이 되니 전용기를 도입하려 했고 야당이 된 민주당이 반대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말바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각 당의 입장은 손바닥보다 쉽게 뒤집힌다.


  586세대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미래당 김소희 공동대표가 “지금의 586은 8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후 한 청중이 “586은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왜 지금은 사고가 굳었다고 보느냐”라고 질문했다. 정의당 왕복근 씨는 “민주화라는 과제와 싸우는 걸 선악구도로 이해했다. 그런 사고방식을 하다가 87년 이후에 다양한 의제가 나오는데 선악의 이분법 구조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중당 송명숙 씨는 “그들의 시대적 소명은 다하지 않았을까. 그 세대가 일군 한국사회의 성과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 성과 위에 우리가 어떤 시대정신을 던질까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씨는 “그들이 386일 때 이전 세대와 투쟁해 권력을 쟁취했듯 우리도 그래야 하고,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 다하면 물러나면 된다”고 덧붙였다.



  청년 정치인들은 청년정치가 눈길만 끌기 위한 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함께했다. 미래당 김 공동대표는 “모든 비례 의석을 청년에 할당하라”라며 “그럼 겨우 10%, 30명이다”라고 말했다. 새로운보수당 송명섭 씨는 “청년정치가 대두된 지 10년이 됐는데 여전히 국회에선 피동적 객체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게 통탄할 노릇”이라며 “청년정치가 기성정치와 싸울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최성준 씨는 주택, 노동, 일자리, 성평등, 생태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청년정치라는 말은 그만하고 이런 의제를 다루어야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현실정치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객석에서 한 청중이 청년 정치인들에게 “견제자로 남을 건가, 소외자를 대변할 건가”라고 물으며 “자신이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권력 운용도 할 수 있다고 믿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13명 중 10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바른미래당 이내훈 씨는 “국가권력을 운영에 대한 물음은 중요하다”라며 “국가권력을 운영해서 경제성장과 국민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려면 국가 시스템 설계를 잘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청년 정치인을 만들어내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에도 입을 모았다. 새로운보수당 송명섭 씨는 “여기 있는 젊은 정치인도 나이든 정치인이 될 것이고 그걸 대비해 교육 시스템을 당내에서 준비해야 한다”라며 “청년 정치인의 양이 확보돼야 질적 향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청년 정치인들은 진영을 넘어 이슈에 맞춰 의견을 내놓고자 했다. 녹색당 백희원 공동정책위원장은 “녹색당의 주요 이슈는 환경과 기수, 미세먼지다”라며 “장기적 해법과 단기적 해법이 배치되지 않는 공공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백정훈 씨는 “보수도 환경보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며 “공동의 가치를 지키자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견도 있었다. 청중에서 국회의 봉쇄조항은 어느 정도가 적합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봉쇄조항은 한 정당이 비례의석을 받을 수 있는 최소 정당 득표율을 뜻한다. 더불어민주당 이동수 씨는 “봉쇄조항이 없으면 전광훈 목사 같이 거대한 조직력이 있는 분이 국회에 진출할 가능성이 많다”며 “그분들이 민의를 잘 반영하는가?”고 말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선 민의를 왜곡한다고 봐서 봉쇄조항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자 바른미래당 이내훈 씨는 “그건 유권자가 알아서 할 문제지 정치하는 사람이 건드릴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12월 1일에 창당한 경기기본소득당 신지혜 씨는 “이젠 노동이 자아실현을 도와주지 않는다”며 “일 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명제가 통하지 않는 시대라는 걸 인지하고 변화시킬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민중당 송 씨는 “노동 없는 미래가 가능한가”라고 물으며 “쟁점과 논의와 자신이 지키고 싶은 신념을 구체화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 좀 더 치열한 이념논쟁이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미리 작성한 성명문을 만들었다. 사회자를 맡은 LAB2050의 윤형준 연구원은 “지금 정치권보다 조정과 대화를 더 잘 한다고 보고 성명문을 만들었다”고 의의를 밝혔다. 아래는 성명문 전문이다.






  우린 정치 성향과 가치관이 서로 다른 9개 정당 소속이지만, 기성 정치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지난 수개월 동안 여러 논의를 해왔습니다. 그 논의의 결과로 오늘 이 자리에서 한 목소리로 '그래서 우리가 정치를 하겠습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 성명엔 기성 정치권에 요구하는 사항들이 담겼지만, 그냥 요구만 하진 않겠습니다. 이 요구사항들을 관철시키는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먼저 내년 4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에 어떤 기대를 품고 계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당선된다면, 특정 정당이 다수당이 된다면 우리 삶이 달라지고, 우리 사회가 바뀔 것 같은 설렘이 있습니까. 정치가 희망과 가능성을 주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정치가 그런 희망과 가능성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도 비슷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 각 정당은 국회의원 구성의 다양화를 이번 선거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의 20대 국회는 역대 최고령 국회였습니다. 당선 당시인 2016년 평균 연령은 55세, 평균 재산은 41억원, 남성 비율은 83%였고, 국회의원을 많이 배출한 직종은 기업인, 법조인, 교수 순이었습니다. 왜 정치가 우리의 문제에 무능한가를 묻기 이전에 정치인에겐 '우리의 문제'가 맞았는지부터 물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특정 세대는 비켜라, 젊은 사람들이 나서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가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론 지난 16일 '정치개혁을 위한 초당적 청년정치인 선언'에서 요구한대로 '청년들에게 기탁금을 지원해 정치의 문턱을 낮추고, 각 정당이 2030 청년을 최소 30% 이상 당선 가능권 안에 공천'해야 합니다. 더 나은 정치를 위해 정당이 유권자에게 주는 선택지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더 이상 이전과 똑같은 '50대 남성 전문직 자산가' 일색의 선택지를 내밀어선 우리의 미래가 암울합니다.

  둘째, 기성 정치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지만, 과거의 경험에 갇혀 있는 기성 정치는 같은 세상을 너무나도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청년은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관점으로 사회 변화를 인식하는 세대입니다. 기후위기, 젠더, 국제관계와 평화 등에서도 우리는 기성 정치와 인식을 달리합니다. 저성장 시대엔 청년실업, 저출생 고령화 등의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도 이전과 달라져야 합니다. 이젠 더 이상 "눈 높이 낮춰서 취직해라", "아이 낳아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라"는 말이 정치의 현장에서 나오면 안 됩니다.

  셋째, 장기적 관점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정치가 20년, 50년 뒤는 고사하고, 5년과 10년 뒤를 내다보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부동산, 연금, 복지를 비롯해 산업과 환경 정책에 있어서도 장기적 관점의 정책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미세먼지 정책 대응이 마스크 지급에만 그친다면 장기적으론 더 많은 공장이 가동돼 미세먼지가 늘어날 뿐입니다. 오늘의 대응이 미래의 재난을 막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은 그래서 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서로 소속 정당이 다르더라도 우리의 요구와 미래 의제를 위해선 초당적인 협력을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저들에게만 맡기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은영(녹색당), 김소희(미래당), 백경훈(자유한국당), 백희원(녹색당), 송명섭(새로운보수당), 송명숙(민중당), 신지혜(기본소득당), 왕복근(정의당), 이동수(더불어민주당), 이내훈(바른미래당), 정다운(더불어민주당), 정현호(무소속), 채성준(정의당)





[행사 후기]

익숙한 것에 대한 열의

추재훈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시구나. 20191219일 혜화동에서 열린 청년정치 간담회에 참석해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이다. 단상에 앉은 사람도, 객석에 앉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고, 그걸 자신있게 말로 풀어냈다.

소속된 정당이 달라도 그 가운데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기도 했다. 생태·환경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른바 비제도권에 있으면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기도 했다. 기본소득당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하자 민중당에서 노동 없는 미래에 의문을 품은 게 대표적이었다.

질문 하나가 주어지면 답변에 20분은 기본이었다. 무대에 앉은 사람들은 프리즘처럼 질문 하나를 수많은 각도에서 바라보고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답변을 내놨다. 이쯤 하면 됐지, 싶을 때 또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모든 질문과 모든 답변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합리적이었다.

뒤이어 익숙한 이야기들이란 생각이었다.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도, 지루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누구나가 아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하는 청년들.

사람들은 청년을 생각하며 새로움’ ‘재기발랄함’ ‘톡톡 튀는 감성따위를 바란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런 걸 원한다면 청년이 아니라 유아를 찾는 게 빠를 것이다. 청년은 익숙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그게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제기를 익숙해질 때까지 들었다면 그건 그 문제가 정말로 엄중하다는 것이다. 청년, 젠더, 환경, 노동, 경제, 먹거리, 일자리, 생태, 기본소득, 모든 이야기는 이미 무수히 쏟아진 것들이다. 이미 수없이 들어서 , 저 이야기구나하는 생각이 들만큼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데도 사람들이 열의를 갖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건 그 속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갖은 문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도내지는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익숙하다. 부조리와 불편과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생소함을 훨씬 지나 익숙해져버렸으니 엄중하다. 익숙함은 엄중함이다.

그래서 오만하게 말하자면, 혹여 아직도 청년을 무슨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낼 비밀결사대 따위로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생각을 조금 수정해보시라. 현실에 맞게 말이다. 청년은 지금껏 기성세대가 그랬듯 익숙한 문제들을 다루어나갈 뿐이다. 그게 중요해서다.

초보적인 수준이나마 청년을 찾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그토록 익숙한 문제를 다룰 자신도 역량도 관심도 없는 기성세대에 대한 실망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청년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기성세대가 익숙한 문제들을 엉망진창이 된 쓰레기더미처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간담회도 중요했지만, 간담회 이후가 더 중요할 것이다. 익숙한 의제들을 다시 한 번 마주하는 걸로는 아쉬운 감이 있다. 논의된 의제들이 이판사판 정치판에 진입했을 때의 논의가 더 꽃피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동의 가치와 기본소득의 가치가 충돌한다면 어떻게 조정할지, 최소정당득표율이 0%라면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이었다. 이런 문제들까지 논할 수 있는 간담회가 생기면 좋지 않을까.

정치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라면, 익숙한 의제들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수준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객석에서 한 질문자가 무대의 정치인들에게 권력 운용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지 물었다. 현실정치에 대한 질문이었다. 12명의 정치인이 라고 답했다. 그게 다였다. ? 저러고 넘어간다고?

질문이 다소 두루뭉술하긴 했지만, 그 지점이야말로 정치를 논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을 쏟아부여야 하는 지점일 것이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면 반드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간담회에서 논의된 의제들을 현실화하는 과정에도 분명 반대자가 생길 것이고, 반대 이유 또한 타당할 것이다. 한 발표자가 말했듯 정치적 토론은 분절의 대립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대립이다. 현실정치에 대한 논의가 간담회 이후에 좀 더 이루어지면 좋지 않을까. 그런 논의가 농익는 일이야말로 청년이 익숙한 문제들을 기성세대만큼, 혹은 기성세대보다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거라는 강력한 증거가 될 테니까.

(그래봐야 지역주의, 인물주의, 계파주의 정치문화를 뚫을 수는 없을 거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당연히, 뚫을 수 없다. 그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 대한 논의와 고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고 없고를 논하든 말든 필요한 일이다.)

엄중한 익숙함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자들은 지겹다고 말하며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도 돌릴 것이나 그건 세계로부터 눈길을 거두는 것이다. 청년정치인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들고 나왔지만 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은 앞으로도 익숙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나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절차적 민주주의도 환경이나 젠더 문제와 같이 익숙하기만 한 문제였다. 이제는 삶의 부분이 됐다. 익숙한 문제들은 결국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자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면,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